3년 전,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22사단 율곡 부대에 근무시절, 당시 상병계급으로 경제에 관심이 많던 필자는 ‘XX경제신문사’의 경제신문을 구독하였다. 전역 10개월 가량 앞두고 전역 후 장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었는데.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흔이 선생님들이 말하던 일명 ‘농땡이’학생 이었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대학교 마저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항상 게임에만 빠져있는 나의 모습 당시는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단체가 나를 ‘컴퓨터’라는 ‘기계’에서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전역 후
전역 후,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중국 유학으로의 계획을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매번 휴가 때 마다 자료를 모아 1년간 꼼꼼히 준비한 계획이라, 아버지께서도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금적인 문제와 중국에 가서 잘 해내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8개월간 땀과의 전쟁
정신력
중국으로 가기 2주전 친구 아버님과 함께 술 마시며 중국 유학에 관한 애기를 하였다. 친구 아버님은 적극적으로 찬성하였지만, 필자에게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버님의 질문이 바로 나의 가슴 한곳을 찌른 것이다. 그건 바로 “자네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태어나 20살이 넘도록 해외 라는 곳은 단지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으로만 접해봤을 뿐 실제로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친구아버님은 나에게 이런 충고를 하였다.
“해외에 나가보지도 않은 친구가 어떻게 중국유학이라는 긴 시간을 쉽게 결정한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며칠 이라도 좋으니 잠시 중국이라는 곳을 먼저 경험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떤가?”
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확신합니다. 자신 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쉽게 ‘포기’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몸으로 안되면 정신력으로 견딜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내심 불안한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난 중국인?
중국에 도착한 첫 날, 누구나 그럴 것이다. 설렘? 하지만 필자에게는 조금의 설렘도 없었다. 중국음식, 중국풍경, 중국사람, 모든 게 편했다. 과연 난 ‘중국인’인 것인가! 너무나 쉽게 적응한 중국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해도 필자에게 이러한 조건은 득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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