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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북경 공항의 실물 같은 역대 IOC위원장 모형

 

 

신설된 북경 수도 제3공항의 국제출국소에 가면 모형 역대 IOC위원장들의 모형을 실물과 흡사하도록 만들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필자가 잠시 지켜본 결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실물인가? 의아해할 정도로 유심히 쳐다보고 가는걸 목격할 수 있었다.

 

▲ 초대 IOC 위원장 Demetrius Vikelas
그리스인(1835-1908.7). 1894년부터 1896년까지 2년간 재임했다. 올림픽 부활과 IOC의 창설을 결정한 1894 6월 파리 콩그레스에 그리스 대표로 참석, 올림픽 부활을 주장하는 쿠베르탕(Coubertin)의 계획을 전적으로 찬동 지원했다. 그러나 부활 첫 대회를 파리에서 개최하려는 쿠베르탕의 계획에는 반대, 1회 대회는 당연히 아테네에서 개최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Vikelas가 초대 IOC위원장에 추천된 것은 올림픽의 부활과 IOC의 창설을 결정한 콩그레스에서, IOC위원장은 차기 개최국에서 선출하기로 합의하고, 1회 대회의 개최지가 아테네로 결정됨에 따른 것이다. IOC위원장에 취임한 Vikelas는 그자신 스포츠와 깊은 관계는 없지만 그리스정부와 그리스국민에게 올림픽 부활의 의의를 알리는데 전력을 경주한 결과 제1회 대회를 성곡적으로 마쳤다. 다음 제2회 대회를 파리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IOC위원장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 제2대 위원장 Pierre de Coubrtin
프랑스인(1863.1.1-1937.9.2). 1896년부터 1925년까지 30년간 재임했다. 1883년 처음으로 영국에 건너가 이튼학교를 방문, 영국 청소년들이 학교 교정에서 럭비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감명맏아, 교육에 스포츠를 도입해야 한다는 결심을 확고히 했다. 올림픽 부활의 생각을 굳힌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인 1889년이며, 이후 자기 나라인 프랑스는 물론 영국, 미국 등에서도 그 당위성을 적극 강조했고, 1892년 파리 솔본느 대학에 있는 프랑스 경기스포츠연합창립 5주년 기념식 강연에서 올림픽의 부활을 제창하였다. 2년후인 1894 6 23, 유럽 선진24개국 47개 단체 79명의 대표자가 참석한 아마추어 문제의 의의에 관한 연구의 국제회의에서, 올림픽부활과 그 주최자인 IOC를 창설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 1896년에 제1회 대회가 아테네에서 열리게 됐다.

 

 

▲ 제3대 위원장 Henri Baillet Latour
벨기에인(1876.3.1-1942.1.6). 1925년부터 1942년까지 18년간 재임. 벨기에 루벤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으로도 근무했다. IOC위원에 선임된 다음해인 1904년 벨기에올림픽위원회를 조직해 1908년 제4회 런던대회에 선수단을 처음으로 참가시켰다. 1차 세계대전 후인 1919 4월에 로잔에서 개최된 IOC총회에서 1920년의 제7회 대회를 자기나라의 안트워프에 유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대회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은데다 벨기에는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준비는 필설로 다할 수 없을만큼 곤란하였지만 책임과 정력을 경주하여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7회 안츠워프대회에서 보여준 수완과 각국 IOC위원들의 절대적인 신임으로 1925년 프라하 IOC총회에서 은퇴한 Coubertin후임으로 제3대 위원장에 만장일치로 추천돼 1942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따까지 자리를 지켰다.

 

▲ 제4대 위원장 J.Sigfrd Edstrom
스웨덴인(1870.11.21-1964). 1942년부터 1952년까지 10년간 재임했다. 예데포리 대학을 졸업한 공학박사이며 국제공예학회 회원. 학생 때에는 육상경기 선수로 활약했다. 1912년 제5회 스톡홀롬 대회를 조직한 공로자로, 전공지식보다 올림픽의 과학적 혁신을 시도한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20 IOC위원에 피선, 1931년부터 부위원장을 맡아 Latour위원장을 도왔다. 1942 Latour위원장이 사망함에 따라, 위원장 직무대리를 거쳐 1946년 로잔 IOC총회에서 위원장에 추대됐다.

 

▲ 제5대 위원장 Avery Brundage
미국인(1887.9.28-1975.5.7). 일리노이대학 출신의 만능 스포츠맨이며 실업가. 5회 스톡홀롬 대회에 5종경기에서 5윌에 입선했다. 1928년 미국체육협회 회장, 1929년 미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36년에 IOC위원, 1946년에는 IOC부위원장을 지냈다. 1952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IOC총회에서 제5대 위원장에 선임돼 1972년까지 20년간 재임했다.

 

▲ 제6대 위원장 Lord Killanin
아일랜드인(1914.7.30-). 캠브리지 대학 예술학부, 솔본느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기자, 졍화제작자, 은행임원등의 다양한 경력을 지냈다. 1952 IOC위원이 되어 1972 IOC위원장에 선임됐다. 1980년까지 8년간 재임. 재임중 올림픽헌장을 수정, 아마추어라는 자구를 삭제하여 올림픽 참가자격을 개정하였으며, 중국을 IOC에 복귀시키는 획기적 개혁을 시도했다.

 

▲ 제7대 위원장 Juan Antonio Samaranch
스페인인(1920.7.17-). 스페인 국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실업가, 금융, 부동산컨설팅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쳤다. 1980년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 당시에 수년간 주소련 대사와 주몽고대사를 겸임하고 있었다. 1966년에 IOC위원이 되어 의전책임자,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다가, 1980 7 16일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제7대 위원장에 선임됐다. 1989년 재선, 1993 3, 1997에 세번째 임기가 끝난다. 올림픽도 시대에 따라 변화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올림픽의 상업화를 촉진, 프로선수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 제8대 위원장 Jacques Rogge

2001 7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12차 총회에서 벨기에 Jacques Rogge가 제8 IOC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지난 1968년부터 76년까지 벨기에 요트 대표선수로 올림픽에 3번 출전한 경험이 있으며 금1, 2을 따낸 기록 또한 보유하고 있다.

 

프로필 출처: 구글검색 참고

모형사진: 북경A4

 

필자가 보기엔 제2IOC위원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물과 거의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2 IOC위원장의 실물은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아 솔직히 실물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플라스틱색감이 너무 심해서 모형이라고 딱 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모형인지 실물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