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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A4의 유학칼럼] 그래! 중국이다.

 

3년 전,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22사단 율곡 부대에 근무시절, 당시 상병계급으로 경제에 관심이 많던 필자는 XX경제신문사의 경제신문을 구독하였다. 전역 10개월 가량 앞두고 전역 후 장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었는데.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흔이 선생님들이 말하던 일명 농땡이학생 이었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대학교 마저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항상 게임에만 빠져있는 나의 모습 당시는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단체가 나를 컴퓨터라는 기계에서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전역 후

 

 전역 후,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중국 유학으로의 계획을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매번 휴가 때 마다 자료를 모아 1년간 꼼꼼히 준비한 계획이라, 아버지께서도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금적인 문제와 중국에 가서 잘 해내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8개월간 땀과의 전쟁

 

 2003년 7월 2 전역한 필자는 빠르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1주일도 쉬지 않고, 노가다(단순 노무직) 라는 험난한 곳에 뛰어들었다. 아무런 기술과 실력이 없던 필자는 어느 한 조선소조공으로 일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자금적인 문제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심리로 시작한 조선업은 지금 나의 보험업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보험업필자가 언젠가 어떠한 사항이 처하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직종의 업종이라 말할 수 있다. 조공으로 시작했던 필자는 틈틈이 기술과 도면 공부를 하였고, 자재관리로 전직 후 조선 BLOCK 생산공정 이라는 직책까지 가는 과정을 8개월 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해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주변의 많은 지인들의 도움 하에 가능했다. 이렇게 8개월 이라는 시간이 흘러 중국으로 가야 할 시간, 필자의 수중에는 '1000만원' 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쥐어져 있었다.

 

정신력

 

 중국으로 가기 2주전 친구 아버님과 함께 술 마시며 중국 유학에 관한 애기를 하였다. 친구 아버님은 적극적으로 찬성하였지만, 필자에게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버님의 질문이 바로 나의 가슴 한곳을 찌른 것이다. 그건 바로 자네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태어나 20살이 넘도록 해외 라는 곳은 단지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으로만 접해봤을 뿐 실제로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친구아버님은 나에게 이런 충고를 하였다.
해외에 나가보지도 않은 친구가 어떻게 중국유학이라는 긴 시간을 쉽게 결정한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며칠 이라도 좋으니 잠시 중국이라는 곳을 먼저 경험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떤가?

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확신합니다. 자신 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쉽게 포기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몸으로 안되면 정신력으로 견딜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내심 불안한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난 중국인?

 

 중국에 도착한 첫 날, 누구나 그럴 것이다. 설렘? 하지만 필자에게는 조금의 설렘도 없었다. 중국음식, 중국풍경, 중국사람, 모든 게 편했다. 과연 난 중국인인 것인가! 너무나 쉽게 적응한 중국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해도 필자에게 이러한 조건은 득이 되어 돌아왔다.